스타트업 3년 사용기

스타트업에서 3년 동안 일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사용기이자 감상기이다.
GDG 8월 미트업에서 발표했었는데, 앞에 서기까지 참 용기가 나질 않았다. orz “써보니 좋더라” 하는 기술 소개나 “저처럼 삽질하지 마세요 ㅠ.ㅠ” 같은 개발팁 전달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속한 회사와 처한 상황이 다 다른데 한 스타트업의 3년 사용기라니! 회사가 아직 Exit 을 한 것도 아니며, 더 오래 일하신 분들까지 듣고 계셔서 좀 민망하기도 했다.
정작 나는 개발자로 큰 기업에서만 일해봤고 스타트업이 어떤 곳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스타트업에 초기멤버로 합류하게 되었고,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시작해서 최근까지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배운 것도 느낀 것도 많았기 때문에, 개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공유를 하면 관심있는 누군가에겐 딱 한 줄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배경정보: 개발자, 큰 기업만 다녔음, 첫 스타트업, 초기멤버로 조인, B2C 플랫폼 서비스, 다양한 직군, 월급나옴, 투자받음

아기 키우기  –  모든 아기는 다 다르다.

스타트업은 아기 키우는 것과 같다고 흔히 비유하곤 한다. 아기는 누군가 꼭 돌보아야 하고 여러 성장단계를 거치며 자라게 되는데, 스타트업도 많은 것들이 부족한 상태에서 멤버들이 서비스를 만들고 조직을 세팅하고 자금조달을 하고 여러 과정을 거치며 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모든 아기가 조금씩 다르듯이 스타트업도 모두 다르다. 어떤 비즈니스를 하느냐, 멤버 구성이 어떻게 되어있느냐, 초기 자본 사이즈는 얼마만큼이냐 등등 많은 것들이 다르다. 참고로 내가 다닌 스타트업 같은 경우는 B2C 플랫폼 서비스를 하였고, 런칭한 날부터 감사하게도 매출이 발생했고 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계속 크는 중이다.

대기업 vs 스타트업  – 안정감 vs 성취감 & 참여감

이전에 대기업만 세 곳을 다니며 느낀점은, 큰 기업은 이미 회사가 커지면서 많은 것들이 정비된 상태이기 때문에 대체로 조직이 단단하게 굳어있는 편이고, 프로세스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이 지속되고 확장되어 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대신 직원으로서 회사 존립에 대한 위기감이나 예민감도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시키는대로 해야지” 라고 말하면서 의사 결정에 대한 납득 없이 일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은 조직이 말랑말랑(?) 하다. 니팀내팀 없음 =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어서 세팅 본인이 다 해야 한다. 기술 스타트업이 아니라면 개발직군이 주변에 별로 없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논의할 대상이 부족하고 심지어 외롭기까지 하다. ;_; 대신 거기서 오는 성취감은 정말 엄청나다. 그리고 의견을 내면 의사 결정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아 내가 정말 참여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위기감

큰 회사에서 위기 의식을 가지란 말을 들으면, 난 일개 멤버인데 임원들만의 리그 아닌가 하고, “그래~ 위기야 위기지만 잘리기야 하겠어” 라는 말도 서로 주고 받는다. (하지만 정말 구조조정 겪어봄 orz) 그런데 스타트업에서는 정말 쭈뼛쭈뼛하다. 특히나 B2C 라면 앱스토어와 결제시스템과 같이 큰 플랫폼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가끔 애매모호한 정책으로 앱 등록시 리젝 당하기도 하고, 스토어에서 앱이 사라지기도 한다. 한번은 회사에서 구글플레이스토어에 등록된 앱이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 날이 안드로이드 개발자분이 회사에 처음 오신 날이었다. 안드로이드 앱 개발하려고, 이전 회사 퇴직하고 눈누난나 왔는데 앱이 없어졌다! … 각종 정책이라고 쓰고 규제라고 읽는 룰들도 많고, 구성원들이 며칠 머리 맞대고 고민하며 애써서 만든 기능이 오픈되고서 이틀 뒤면 다른 사이트가 똑같이 베끼기도 한다. 경쟁사 중에서 독보적이면 참 좋겠지만, 리소스와 자본이 상대적으로 빵빵한 다른 큰 회사의 한 팀과 생존을 두고 경쟁하게 될 수도 있다.

사용자 증가 > 운영업무 증가 > 가능한 한 자동화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서비스가 잘되거나 비즈니스가 잘되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들을 보면 정말 기쁘다. 하지만 한쪽에 집중하느라 미뤄둔 것들에서 주로 운영업무가 발생한다. 내부 툴일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잘 보여지지는 않는 부분에서, 필요하긴 하지만 당장은 아닌 것들에서 수동으로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어떨 땐 신규 기능 개발보다 단순 운영업무 처리 비중이 높아지기도 한다. 반성의 얘기이기도 한데, 익숙해진다는 것은 처리가 빨라졌단 뜻으로 좋기도 하지만 대신 개선할 것을 미루게 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우선순위가 자꾸 밀려오다가, 막상 할 수 있을 여력이 되었을 때는 ‘음 뭘 고쳐야 하지?’ 또는 ‘그냥 쓰지 뭐..’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해서,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하려는 개선 의지도 중요한 거 같다. 개발에서의 운영 업무만이 아니라 회사 내에 모든 운영 업무가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들이 드러남  –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고 나누는 것이 중요

업무가 항상 매끄럽게 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모든 일이 다 계획한대로 되지 않으며 계획조차 우당탕탕 할 때가 많다. 서비스는 라이브 중이니 바로 처리해야 할 이슈도 많고, 부족했던 것들이 잔뜩 보이고, 모든 일의 우선순위가 다 높은 것만 같다. 특히나 초기에는 정해진 프로세스도 없고, 모여서 여기서 얘기하면 저기서 처리하거나, 들어오는 CS 답변을 나눠서 하고, SNS 를 통해서 홍보도 나눠서 한다.
그런데 난 이런것이 초기에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도 같이 했었던 사람들끼리 이전과 비슷한 서비스를 비슷한 방식으로 만든다면야 이런 일이 덜하겠지만, 이 세 조건이 합쳐져서 소위 세련되게 일하는 스타트업이 얼마나 될까? 다만 여러가지 발생하는 문제들을 함께 인식하고 나누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것은 너의 문제, 나는 무엇 담당이니 이것만 할 것이다.’ 라는 태도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작은 것들로 팀웍이 다져지기도 한다. 부족한 프로세스를 잡아가고, 구멍난 자리에 사람을 뽑거나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해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또한 일을 잘 하고 있을 땐 아무도 신경 안쓰다가 문제가 튀어 나와야지만 모든 시선이 그곳에 가고 그 자리와 책임이 더 크게 보이기도 한다. 평소에 각 자리에서 본인이 얼만큼 많은 것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잘 일하고 있는지, 일정이나 사람이 얼만큼 부족하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나 개발자나 여러 실무자들이 챙겨야 할 이슈라고 생각한다.

손 부족  –  적절한 사람을 적절한 타이밍에

회사와 서비스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일손이 점점 부족해진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들어온다고 해서 내 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커뮤니케이션 코스트가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일을 처리하거나 해치우는 사람 뿐 아니라 회사를 더 키울 비즈니스 과제를 물고 들어오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많이 커져야 일이 좀 줄어드는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자리에 지금 당장 사람이 필요한데 그제서야 사람을 뽑으려고 하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그렇다고 너무 앞을 내다보면 맞지 않는 일에 사람을 뽑을 수도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사람을 뽑는게 중요하고 스타트업일수록 리더가 잘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이 들어오면 빠르게 점프인해서 업무 성과를 내주길 바라면서 그만한 프로세스는 갖춰있지 않아, 결국 알아서 해주길 기대하는 모습이 될 때가 있다. 이 부분이 서로에게 어려운 부분 같다.

프로세스 정비 / 조직화  –  회사마다 모두 다 다르다

회사가 커지면서 같이 움직이는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세스와 조직을 잘 정비해가는 것은 필수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성장통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정비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할 것인지, 어떻게 일하는 사람을 편하게 할 것인지의 본질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구성원들의 공감을 더 얻을 수 있고, 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해갈 수 있다.
그리고 모든 회사가 성격이 다 다르듯이 프로세스도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다. 저 회사에서 성공적인 것이 이 회사에서는 안맞을 수도 있다. 조직에 맞게 최적의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  – 시작이자 끝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지만 가장 기반이 되는 것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작은 회사는 기업문화가 시작이자 끝이다! 왜냐하면 문화가 일하는 방식이나 구성원들의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기로 하자는 규칙이나 정책 같은 것들이 모든 것을 커버할 수는 없다. 문화는 구성원들 모두가 만들어 가는거지만 리더의 의지가 한 몫 하는 것 같다.

번아웃  –  공감과 격려가 필요해요

스타트업에서 정말 빠져서 일하다가 보면 번아웃이 오기도 한다. 이 늪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역시 동료나 멘토의 파워가 중요한 것 같다. 고민을 함께 나누는 공감 상대, 또 “잘하고 있어, 누구라도 힘들꺼야, 난 너를 믿어” 라고 신뢰를 보내주며 격려해주는 대화상대가 큰 도움이 된다. 나를 격려해줄 사람을 찾는 것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내가 힘이 되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번아웃에는 안빠지는 것이 더 좋을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중간중간 작은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나, 어떤 형태로든 인정받아야 하는 것 같다. 사실 어려운 문제이고 정답은 잘 모르겠다. @@

기술 부채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3년 전에 처음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상황상 일정이 한달반 정도 밖에 없었다. 인프라를 관리하거나 모니터링 시스템을 개발할 여력도 부족했던 상황에서 백엔드로 구글앱엔진을 선택했다. 그리고 하이브리드앱으로 개발했는데 이것이 스타트업 사례가 되면서 다른 스타트업에서 따라하는 경우가 있었다. 정작 회사 서비스와 요구사항은 점점 복잡해지면서 네이티브 앱으로 바꾼지 오래되었고, 백엔드도 좀 더 복잡한 기술 스택으로 확장하고 있다. 처음엔 사용자와 트래픽이 얼만큼 늘어날지 몰랐고, 혼자서 기능 개발하는 것만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이후에 개발자들이 더 합류했고 요구사항이 더 복잡해졌기 때문에, 그때는 앱엔진을 선택한게 잘한 것이고 지금은 점점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것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서비스 오픈, 1년, 2년, 3년 지났을 때의 서비스의 상황과 기술은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각 과정에서 이렇게 쓰는 기술들이 ‘아 넘 급하니 이렇게 해두자’ 고 처음부터 부채로 인식하고 선택되는 경우도 있고, 그때는 최고의 선택이었으나 지나고보니 서비스가 복잡해지면서 부채가 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 ‘기술’ 부채이기 때문에 개발자가 일해서 갚아야 하지만, 비즈니스의 일정상 그리고 그때 가지고 있는 리소스 상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이기 때문에, 기술부채는 개발자나 개발팀의 부채가 아니라 회사가 함께 갚아가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과거에 잘 빌려 썼기 때문에 여러 스타트업들이 서비스를 적절한 시기에 딜리버리한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빚덩이가 불어나기 전에 조금씩 잘 갚아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스타트업 중독


돌이켜보면 참 고생스러웠다. 미친듯한 일정을 맞춰야 하는데 이미 잠은 몇주째 제대로 못자서 눈물을 흘리며 키보드를 친 적도 있다. ㅠ.ㅠ 그럼에도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이 큰 경험이었고 많이 배웠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부트스트랩 하고나서, 지분이나 스톡옵션 기간만 채운 후에 계속 이직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조직 세팅하고 크는 것이 재밌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중독이란 표현을 썼는데, 변화가 빠르고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정말 힘들어도 즐거워서 다음에도 또 이 길로 가지 않을까 싶다~!

슬라이드 쉐어: http://www.slideshare.net/curioe_/3-65668400